2010년 04월 17일
everyman, Philip Roth
며칠째 마셔대던 가짜 커피에 질려 카페를 찾았다. 어느 새 흡연실이 없어져 어색한, 익숙해야만 하는 카페에 앉아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는.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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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크레이머는 상당히 으스대며 걸었고, 볼품없을 정도로 공격적으로 테니스를 쳤고, 작은 세스나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 그러다 크레이머는 뇌암으로 쓰러졌고, 부인이 휠체어를 밀며 마을 거리를 돌아다니는 광경이 눈에 띄곤 했다. 그는 은퇴를 한 상태에서도 계속 중요한 사명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치는 사람처럼 전능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죽기 전 열한 달 동안은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작아진 것에 어리둥절했고, 제럴드 크레이머라는 이름을 부르면 대답을 하는 사람이 약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죽어가는 사람 - 이제 테니스공을 강하게 때리지도 못하고, 보트를 몰지도 못하고, 비행기를 조종하지도 못하고, 하물며 ‘몬터스 카운티 비글’을 편집하지도 못하는 사람 - 이라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그의 멋들어진 기벽 중의 하나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이따금씩 턱시도를 차려입고 오십 년 남짓 함께 한 부인과 더불어 마을 레스토랑의 송아지고기 스캘로핀을 먹으러 간다는 것이었다. “젠장, 아니면 달리 입고 갈 데도 없잖아.”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내놓는 우락부락하면서 매력적인 핑계였다. - 그는 가끔씩 예기치 않은 매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술 뒤에는 부인이 옆에 앉아 그가 비뚜름하게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음식을 떠먹여주곤 했다. 그 으스대던 남편, 그 우악스러운 호남에게. 많은 사람들이 크레이머를 알고 좋아했기 때문에 거리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가 심하게 의기소침한 상태일 때면 그의 부인이 고개를 저어 다가오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 한때 독단적으로 모든 일의 중심에 있다 이제는 아무 일에도 끼지 못한 사람의 쓰라린 의기소침함이었으니. 사실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가 나서 절대적인 소거라는 축복을 기다리고 있는 꼼짝도 못하는 영(零, zero)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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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소설가들, 그 중에서도 미국 소설가들은 담담하고 건조하게 절망을 읊조리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코맥 매카시, 레이몬드 카버, 존 업다이크, 나다니엘 웨스트 그리고 필립 로스 역시. 열정은 형체 없고, 의지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불행이 편재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세계를 뚫어나갈 수 없다. 각자의 불행 앞에서 낭만과 존엄은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성공과 섹스는 결코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희망은 철저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일 뿐이다. 행복은, 절망적인 모호함 뒤에 숨어 있어 도저히 다다를 수 없다. 필립 로스는 그러한 진실을 부인하지 않고, 그에 대한 성찰을 진중하게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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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누워 있을 수는 없어요.” 밀리선트가 소리쳤다. “도저히 더 그럴 수 없어요. 나는 아주 생기있고 적극적인 사람이었어요. 제럴드의 부인이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우리는 안 가는 데가 없었으니까요. 나는 아주 자유로운 느낌으로 살았어요. 우리는 중국에도 가고, 아프리카도 다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지금은 진통제를 잔뜩 먹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뉴욕에 가는 것도 힘들어요. 게다가 나는 진통제도 몸에 잘 안 맞아요. 그것만 먹으면 완전히 미쳐버려요. 게다가 거기에 도착할 때면 다시 통증이 찾아와요. 아,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다 시련을 겪고 있죠. 내 이야기라고 특별한 것도 없는데. 괜히 부담만 안겨 드려서 미안해요. 선생님도 선생님 이야기가 있을 텐데.”
“전기담요가 좀 도움이 될까요?” 그가 물었다.
“뭐가 도움이 되는지 아세요?” 밀리선트가 말했다. “지금은 사라진 그 목소리라면 도움이 될 거에요. 내가 사랑했던 특별한 사람의 목소리. 그 사람이 여기 있으면 이 모든 걸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람 없이는 안 돼요.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그 사람의 약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암에 걸리는 바람에, 그게 그 사람을 짓밟아버렸지요. 나는 제럴드가 아니에요. 제럴드라면 그냥 온 힘을 그러모아 해냈을 거에요.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다 늘어놓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했을 거에요. 하지만 나는 못 해요. 나는 통증을 더 견딜 수가 없어요. 그게 모든 걸 뒤엎어버려요. 때로는 한 시간도 더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나 자신에게 그걸 무시해버리라고 말하죠. 상관없다고 말해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요. ‘말려들지 마, 이건 유령이야. 그냥 성가신 것일 뿐이야. 그 이상이 아니야. 거기에 힘을 부여하지 마. 협조하지 마. 미끼를 물지 마. 대응하지 마. 그냥 밀고 나가. 뚫고 나가. 휘두르지 않으면 거구로 휘둘리게 돼.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하루에 수만 번씩 그런 이야기를 반복해요. 마치 내가 제럴드가 되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러다 통증이 너무 심해지는 바람에 슈퍼마켓 바닥에라도 드러누워야만 하고, 그럼 그 모든 말이 의미가 없어지죠.” (...) 그는 가방을 밀리선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잔에 남은 물로 약을 먹었다. 서너시간동안 통증을 없애주는 아편제였다. 그녀는 그 크고 흰 마름모꼴 약을 삼키자마자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로 긴장을 풀었다. “약효가 생길 때까지 여기 누워 계세요.” 그가 말했다. “그런 다음 들어오세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녀는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통증이 사람을 정말 외롭게 만드네요.” 그러면서 다시 허물어지며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정말 창피해요.”
“창피할 일 전혀 없습니다.”
“있어요, 있어요.” 그녀는 울었다.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거, 궁상맞게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거...”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그런 건 전혀 창피한 게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몰라요.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돼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부끄러운 거로구나. 그는 생각했다. 자신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초라한 거겠지. 하지만 누군들 안 그럴까? 그들 모두 자신이 이런 꼴이 된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안 그런가? 신체의 변화가 부끄러웠다. 그를 비틀어버린 오류들과 그를 기형으로 만든 충격들 - 스스로 가한 것과 외부에서 온 것 모두 - 이 부끄러웠다. 밀리선트 크레이머가 겪는 축소의 과정에 무시무시한 웅장함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것과 비교되어 자신의 황량함이 아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녀가 겪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심지어 손자들의 사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통 집 사방에 걸어놓고 있는 그런 사진들, 어쩌면 이 여자는 이제 그런 것도 안 볼지 몰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통증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쉬잇.” 그가 말했다. “쉬잇, 진정하세요.” 그는 침대로 돌아가 잠깐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가 수업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진통제 약효가 생기기를 기다렸다가 그릴 준비가 되면 들어오세요.”
열흘 뒤 밀리선트는 수면제를 잔뜩 먹고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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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미망인 밀리선트 크레이머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녀에게는 죽은 남편 제럴드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의 목소리라면, 그가 옆에 있다면 이 모든 고통과 불행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감당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해 줄 것만 같다. 하지만 제럴드는 뇌암으로 죽었고, 그의 고통과 절망, ‘화가 나서 절대적인 소거라는 축복을 기다리고 있는 꼼짝도 못하는 영(零, zero)’이 되어버린 제럴드를 지켜본 건 다름 아닌 밀리선트였다. 밀리선트가 제럴드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던 것처럼, 설사 제럴드가 밀리선트의 곁에 있었을 지라도.
‘말려들지 마, 이건 유령이야. 그냥 성가신 것일 뿐이야. 그 이상이 아니야. 거기에 힘을 부여하지 마. 협조하지 마. 미끼를 물지 마. 대응하지 마. 그냥 밀고 나가. 뚫고 나가. 휘두르지 않으면 거꾸로 휘둘리게 돼.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고통에 맞선 밀리선트의 절규는 일상적인 불행과 절망에 대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대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약을 먹기 전에도, 약을 먹고 난 이후에도, 고통은 밀리선트를 지배한다. ‘통증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불행은 개인을 압도적으로 짓누른다. 밀리선트는 자살하고, 세계는 피를 흘린다. 희망은, 특히나 죽음 앞에서는, 덧없을 뿐이다.
필립 로스는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라는 말로 죽음이라는 절망의 선두주자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나직하게 읊조린다.
이 압도적인 절망 앞에서 개인은 욕망에 탐닉할 수밖에 없다. 하우스는 바이코딘에, 윌슨은 값싼 동정심에, 커디는 하우스의 시선에, 타웁은 무력감에, 포어맨은 질투에, 써틴은 허무함에 빠져드는 것처럼. 도덕과 열정의 충돌을 근근히 무마하고, 애정과 섹스간의 간극을 간신히 수습하고, 사회적 성공과 인간적 애정 사이에서 갈등하며, 편안함과 자극을 저울질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며, 진빠지는 싸움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너도, 그리고 나도, 모든 인간은, 그러한 싸움을 지속해나간다. 이 세계 속에서 삶은 끊임없이 싸워댈 것을 요구하고, 그 싸움 속에서 나는, 너는, 모든 이는 욕망에 맞서 기꺼이 욕망 속으로 빠져든다. 하우스는 끊임없이 포르노를 틀어대고, 윌슨은 원나잇을 시도하고, 커디는 루카스를 통해 하우스와 섹스하고, 타웁은 돈다발과, 포어맨은 써틴의 그림자와, 써틴은 자그마한 애정을 주는 아무나와, 관계를 갖는다. 욕망의 강도를 조절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해 성공적인 삶처럼 치장하고, 행복을 가장하더라도 죽음은 밤손님처럼, 불행은 안개처럼, 인간을 둘러싸고 지배한다. 모든 이를 짓누르는 불행, 그리고 모든 이가 맞서야만 하는 절망. 인정하기 싫더라도, 모든 이의 삶은 그런 식으로 구성된다.
제럴드와 밀리선트의 이야기는 약 190페이지의 분량 속에서 서너 페이지를 차지할 뿐이다. 필립 로스는 주인공 ‘그’의 삷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처절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세세하고도 담담하게 그린다. 이야기는 ‘그’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를 통해 모든 이를,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죽음처럼, 절망과 불행이 필연적이라면 희망과 행복 역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답은 ‘그’와 모든 이의 삶 속에, 그 살아감 속에 있다. 필립 로스의 목소리는 나직하나 그의 빛나는 눈빛은 이야기 전체를 비추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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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견딜 수 있어.” 피비가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설령 신뢰가 깨져도 말이야. 솔직하게 말만 한다면. 그때는 다른 방식으로 인생의 파트너가 되겠지만, 그래도 파트너로 남는 건 가능하단 말야. 하지만 거짓말이라니... 거짓말은 정말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값싸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걸 지켜보는 거야. 다른 사람이 수모를 겪는 걸 지켜보는 거라고.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 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당신처럼 능숙하고 집요하고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심각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 상대에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아마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할 거야. 거짓말이 섹스도 안 하는 가여운 짝의 감정을 고려해주는 친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겠지. 자기 거짓말이 미덕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얼간이를 위한 관용의 행동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이건 그냥 이거야. 빌어먹을 거짓말이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빌어먹을 거짓말이란 말이야. 아, 이런 짓을 계속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이런 일은 너무 잘 알려진 거잖아.”
(...)실제로 이런 일은 다 너무 잘 알려진 일이라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피비는 어머니 장례식 다음날 밤 그를 쫓아냈고, 협상으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한 뒤에 이혼을 했다. 그는 벌어진 일을 달리 이해할 방법도 모르고, 달리 책임질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또 누구보다도 딸 낸시의 눈에 자신이 회복된 것처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몇 달 뒤 메레테와 결혼을 했다. (...)오래지 않아 그는 메레테가 그 작은 구멍 이상의 것, 아니, 어쩌면 그 이하의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녀의 대담함은 전적으로 에로티시즘의 영역에만 한정되어 있으며, 그녀가 그들 사이의 에로틱한 모든 것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이 그들을 강력하게 맺어주는 유일한 요소임을 뒤늦게야 알게 된 셈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쓸모 있는 아내를 아주 약한 압력에도 부서져버리는 아내로 바꾸어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이혼 직후의 상황에서는 그녀와 결혼하는 것이 범죄를 덮어버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인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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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혼과 세 번째 결혼 사이에 ‘그’와 아내 피비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한 위의 서술은, 필립 로스/에브리맨의 뛰어난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피비의 대사와 이어지는 상황에 대한 담담한 기술을 통해, 욕망과 관계의 빌어먹을 복잡함에 대해 말하고, 혼돈 그 자체인 것만 같은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에이허브는 왜 피쿼드에서 내리지 않는지, 캐리는 왜 에이든이 아닌 빅을 선택하는지, 마이클은 왜 프레도를 죽여야만 하는지, 박찬욱의 영화는 왜 불쾌해야만 하고, 홍상수의 영화는 저열해 보여야만 하는지. 정녕 삶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인지. 바로 그런 지점들을.
# by | 2010/04/17 21:17 | 트랙백 | 덧글(0)




